원단을 이야기할 때 동대문 시장과 대구 섬유 업계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동대문 시장은 국내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가장 먼저 찾는 원단 조달의 중심지이며, 대구 섬유 업계는 오랜 전통으로 염색, 가공, 봉제, 유통 등 섬유 인프라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영섬유는 이 두 곳을 중심으로 유통하고 있다. 중국을 거점으로 무역을 병행해 다양한 원단을 확보한다. 20년 동안 사업을 운영하면서 업계에서 합리적인 단가, 폭넓은 원단 구성, 확실한 A/S를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가격이 낮으면 품질도 낮다’라는 말은 막상 주문해서 써본 사람들의 피드백과 오래 이어온 거래처의 신뢰 앞에서 바로 사라진다.
덕분에 패션 브랜드는 의류 제작에 필요한 원단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고, 소비자는 고품질 원단으로 완성된 의류를 구매할 수 있다. 박선윤 대표와 인터뷰를 나누었다.
지영섬유 박선윤 대표. 국내와 중국을 거점으로 섬유를 유통하는 원단 컨버터 기업 ‘지영섬유’를 운영하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과 높은 품질 원단은 패션 브랜드와 의류 제조 기업이 지영섬유를 찾는 가장 큰 이유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이화여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에 대구 아버지 섬유 공장에 취직했다. 현재 원단 컨버터 기업을 운영하며, 동대문 종합시장과 의류 브랜드에 원단을 납품하는 원단 컨버터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가 걸어온 섬유의 길을 잇는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치열하게 일하고 있다.
Q. 섬유업계에서 컨버터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컨버터는 패션 브랜드의 의뢰를 받아 공장과 협업하여 다양한 원단을 기획, 개발, 가공해 유통하는 일을 한다. 브랜드와 공장을 중개 한다고 보면 된다. 브랜드가 컨버터를 선호하는 이유는 복잡한 과정을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처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 납기, 품질관리, 불량에서 오는 어려움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트렌드에 맞는 원단을 빠르게 제안받고, 소량 생산부터 재생산까지 맡길 수 있다.
Q.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섬유 공장 무역부에서 일하면서 원단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직접 다뤄보면서 생긴 흥미가 이어져 섬유 일을 시작하게 됐다.
2001년에 지영섬유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2011년에는 주식회사로 확장했다. 함께 무역부에서 일하던 남편이 합류해 힘을 보탰다. 한 걸음씩 경험을 쌓으며 지금의 회사로 성장해 왔다.
Q. 동대문종합시장에서 사업을 시작할 당시 어려움은 없었나.
사업 초기에는 의류 브랜드가 아니라 동대문 종합시장 위주로 영업했다. 상인을 상대하고, 미수금을 챙기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결제 대금이 10분의 1 정도만 들어오는 상황이 자주 있었다. 돈을 지급하지 않은 채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수익을 만들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Q. 자연스럽게 신용을 최우선 가치로 두게 됐을 것 같다.
그렇다. 그 시절 동대문 시장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어떤 상황이 와도 약속한 대가를 지급해야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 이후로 자금이 부족하면 집 담보 대출을 받아서라도 먼저 결제했다. 우리에게 납품해 주는 공장 분께 제때 대가를 드리지 못하면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신용을 1순위로 두고 사업하고 있다. 사업에서 돈은 실제로 받아야 내 돈이 되는데, 받을 돈을 이미 내 돈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반대로 지급해야 할 돈을 내 돈이 아닌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이런 마음가짐이 신용을 무너뜨리고 사업을 계속 이어가는 데 큰 어려움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됐다.
Q. 무역부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까지 사업을 넓혔다.
10년 전 중국 사무실을 열고 무역업까지 함께하고 있다. 지금은 서울 사무실에 5명, 중국 사무실에 2명의 직원이 있다. 예전에는 대구에서 만든 원단을 주로 취급했지만, 최근에는 중국에서 가격과 품질 모두 경쟁력 있는 소재가 많이 나오면서 중국산 원단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중국산 원단은 대규모 설비에서 염색, 프린트, 가공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고급 라인에서도 현장에서 느끼는 만족도가 매우 높다.
Q. 주 고객층이 궁금하다.
이랜드그룹, 세정그룹, 패션그룹형지, 위비스와 같은 대형사를 포함해, 총 20여 개 업체 브랜드와 거래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온라인에서 옷을 많이 고르지만, 중장년층은 매장에 직접 방문해 원단을 살펴보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해당 고객층을 대상으로 한 브랜드들과 거래가 계속되고 있다.
Q. 고객관리 방법은 무엇인가.
원단을 수출한 경험이 있어서 원단을 다루는 방법이 달랐다. 해외 바이어의 요구 수준, 검사 기준, 클레임 처리 방식까지 직접 겪으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최선을 다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을 빨리 깨우칠 수 있었다.
그래서 소재를 담당하는 디자이너와 구매팀을 만날 때 그들이 요청하는 A/S를 빠짐없이 진행한다. ‘조금 더 부드러웠으면 한다’, ‘터치가 조금 달라졌으면 좋겠다’ 같은 말이 들어오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아 해결한다.
이 과정을 거치며 우리에게 맡기면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믿음을 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거래처가 한 곳뿐이었지만, 함께 일한 디자이너들이 다른 브랜드로 옮겨가면서 우리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좋은 소문이 퍼지며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해 왔다.
Q. 지영섬유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우리의 원단 가격은 정말 합리적이다. 주문을 늘리려고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가격을 붙이기보다, 누구나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가격을 꾸준히 유지한다.
처음에는 가격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이 있어서 속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 번이라도 주문해 본 사람들은 직접 써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뀐다. 품질에 비해 가격이 합리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사업 초기에는 대구에 있는 공장에서 다양한 원단 개발을 시도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고객에게 정직한 가격을 제공하는 일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Q. 가격 경쟁력의 비결이 궁금하다.
대구 공장과 직접 거래하기 때문에 중간 유통 단계를 거의 거치지 않는다. 생지를 구매해 염색을 직접 하고 공장 핸들링까지 하면서 원가를 크게 낮춘다.
중국 원단을 많이 다루는데, 중국 현지 사무실을 두고 있어 수급이 안정적으로 가능하다. 한국으로 들여오는 물량보다 수출이 더 많아 무역업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수입 컨버터 중에서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시장에 뛰어들었고,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Q. 경영철학은 무엇인가.
신용과 사람이다. 신용은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예의다. 납품 업체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의 지영섬유를 있게 해준 또 다른 원동력은 사람이다. 몇 사람의 몫을 해내는 직원들, 거래처에 일하는 구매부, 소재실 디자이너분들이 회사를 옮기면 우리를 다시 찾아주시고, 소개해 주시면서 거래처가 점점 늘어나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그들을 진심으로 대한다. 때때로 현실적으로 맞추기 어려운 요청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모두가 원단을 최선으로 다루려는 마음에서 생기는 일이다. 그래서 계산보다 진심을 앞세우는 태도로 대하려고 한다.
Q. 사업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늘 변수가 많은 하루를 보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래서 사업을 하며 지나온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는데, 그중에서도 첫 시작이 기억에 남는다.
두바이로 수출을 많이 하던 시기였는데, 두바이가 중국과 경쟁을 하면서 어렵던 때다. 그러던 중 남편이 우연히 참석한 자리에서 지인을 만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첫 거래처를 소개받았다. 그 만남이 우리가 컨버터 사업에 들어가게 된 시작이었다.
돌아보면, 그 자리가 없었다면 지금의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충분히 준비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Q. 최근 업계 분위기는 어떤가.
대구 섬유업계는 상황이 나날이 악화하고 있다. 원자재와 인건비가 상승으로 문을 닫는 업체가 많아졌다. 여기에 중국이라는 거대한 경쟁 상대가 빠르게 성장해 더 힘들어졌다. 중국산 완제품 수입이 늘어난 점도 큰 부담이다.
국내 봉제 공장이 거의 사라지면서 한국에서 생산한 원단을 가져다 옷을 만들 공간이 거의 없는 현실도 문제다. 판매자는 원단을 구해 봉제를 맡기기보다 중국에서 완제품을 들여오는 편이 훨씬 나은 상황이어서 국내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다.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Q.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옷을 만들어 납품하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의류 제작을 위해선 디자이너를 영입해야 하며, 원단뿐만 아니라, 실, 지퍼, 단추 같은 부자재가 많이 들어가 원단을 다룰 때와는 또 다른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그만큼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내 섬유 산업의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 한국의 재고 원단을 후가공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의류 제작만큼이나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