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가업을 이어받은 주식회사 서울패키지 김전회 대표. 젊은 나이지만 단단한 의지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꿈이 마음속에 일렁이고 있다. 가로로 긴 눈 안에는 목표를 향한 빛이 반짝인다.
업계 1위를 목표로 매일 현장을 뛰며 회사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일찍이 가정을 이루어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여섯 명의 직원과 함께 회사를 책임지고 있다. 스물넷의 청춘을 현장에 쏟아부은 그는, 지금도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김전회 대표와 인터뷰를 나누었다.
서울패키지 김전회 대표는 스물넷의 나이에 갑작스레 가업을 이어받았지만, 기술보다 사람을 먼저 이해하며 회사를 다시 정비했다. 박스 하나를 만들 때도 브랜드의 얼굴을 담는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서울패키지’는 어떤 기업인가.
우리 회사는 고객의 요구에 맞춰 박스 구조 설계부터 지류 선정, 디자인까지 모두 아우르는 원스톱(ONE STOP)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브랜드의 가치를 담아내는 디자인 패키지를 제작하며, 다년간 쌓아 온 인쇄 기술과 노하우로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고품질 제품을 만들어 왔다. 기획부터 디자인, 인쇄, 후가공까지 모든 과정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소량 맞춤 주문부터 대량생산까지 폭넓게 대응하고 있다.
식품, 화장품, 생활용품 등 다양한 산업군의 특성과 요구를 반영한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며, 더 나은 품질과 세련된 디자인, 그리고 견고한 신뢰로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가 되고자 한다.
현재 주요 설비는 총 9종으로, 벤처기업 인증과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구개발 전담 부서를 통해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인쇄기(미쓰비시 옵셋 5도 인쇄기), 접착기(썬 삼면접착기), 종이·골판지 재단기, 코팅기(써멀 식품 필름 코팅기), 합지기(YB 1450HG 자동고속합지기), 톰슨기(산화기계 2대, 쓰가노 1대), 제판기, 자동 랩핑기, 트레이 접착기 등 다양한 장비를 구비해 박스 기획부터 인쇄, 후가공 서비스까지 모든 과정을 자체적으로 진행한다.
서울패키지 공장 내부 전경. 인쇄기부터 합지기, 톰슨기, 코팅기까지 9종의 주요 설비를 갖춰 모든 공정을 자체 생산으로 진행한다. 기획에서 후가공까지 한곳에서 완성되는 시스템이 품질의 일관성과 생산 효율을 높이고 있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이십 대 청춘에 어떤 계기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는지 듣고 싶다.
갑작스럽게 가업을 이어받게 됐다.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재학 중이었는데,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지시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처음에는 물건 운반부터 시작했고, 경영까지 맡게 됐다. 당시에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스물넷의 나이에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언젠가는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서 내가 맡겠구나’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Q. 가업을 이어오며 어떤 변화와 성장을 이뤘는지 궁금하다.
차별화된 점은 영업하는 방식과 관리하는 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던 당시에는 직접 얼굴을 보거나 전화 통화로 구두 영업을 진행했다. 지금은 업무가 모두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전달되고, 관리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거래처마다 단체방을 만들어 체계를 조직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거래처 직원들과 우리 직원들을 모두 메신저 방에 초대해 문제가 생겼을 때나 납기 조율, 발주서 등 모든 협의 사항을 그 안에서 해결한다.
성장하게 된 경우는 코로나가 오기 2년 전부터 직접 발로 뛰며 영업을 시작했다. 말 그대로 맨땅의 헤딩이었다. 메일로 무작정 제안서를 보내고, 연락이 오면 바로 찾아가서 영업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업체들이 성장하면서 우리 회사도 함께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당시 스타트업이 성장세를 보이면서 발주 물량이 늘었고, 기존 거래처에서 나오는 이익이 합쳐지면서 오르막길을 오르게 됐다. 현재는 대기업과의 협업도 진행하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칠성사이다와 아성다이소가 있다.
Q. 5년째 기업을 경영 중이다.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을 텐데.
너무나도 많았다. 초반에는 젊음이 가장 큰 벽이었다. 이 업계에는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 많아 어린 나이에 사업을 하는 나를 대수롭지 않게 보는 시선이 많았다. 당시에는 설비가 한 대뿐이라 대부분 작업을 외주로 처리했다. 박스 제작은 단순하지 않다. 공정이 복잡하고, 6~7가지 설비를 갖춰야 작업이 가능하다. 이런 장비를 갖추기 전까지는 외주 처리에 의존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원청기업이었지만, 나를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5년 전에 공장을 설립했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공장을 세운 셈이었다. 원래라면 6개월이면 끝날 일이었는데 부동산 업자를 잘못 만나 일이 꼬였다. 결단을 빨리 내리지 못한 탓에 공장 설립까지 3년이 걸렸다. 그동안 외주 처리는 계속 진행됐지만, 3년이라는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흘려보냈다. 공장을 세우고 1년 뒤에는 태풍 피해를 겪었다. 제품의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 당시에는 너무 절망적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가장 힘들었던 시기다. 그때 거래 중이던 두 곳 업체 작업물이 태풍으로 모두 손상됐다. 그때의 일은 꿈속에 나올 정도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김전회 대표는 공장 설립 과정에서 태풍 피해가 겹치며 제품 절반을 잃는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그때의 좌절이 지금의 운영 능력과 결단력을 만들어줬다고 전한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생긴 경영철학이 궁금하다.
밑바닥부터 주인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표라고 해서 책상에 앉아 지시만 하는 관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직접 발로 뛰며 현장을 뛰어다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오전에는 직원들이 올린 결재를 처리하고, 오후에는 많게는 두세 곳씩 미팅을 잡아 영업을 다닌다.
리더가 어느 순간 손을 놓으면 회사는 금세 무너진다는 신념이 있다. 회사가 커지면 보통 영업 사원을 두지만,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영업과 관리는 끝까지 직접 하려고 한다.
직원들과 부딪히며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이 요청하는 업무나 필요한 부분이 있을 때는 직접 대화로 소통하며 해결하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하고 있어 지금까지 큰 갈등은 없었다. 급여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듣고, 수긍하거나 설득해 문제를 키우지 않으려 한다. 함께 가야 할 직원이라면 즉시 조정해 주는 편이다.
Q. 앞으로의 목표를 위해 정책적으로 기대하거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스마트공장시스템구축지원’을 조금 더 확대해 주었으면 한다. 아무래도 지원사업이다 보니 경쟁이 치열하고, 일정 규모 이상이 되어야 지원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조건을 완화해 중소기업이나 소기업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을 많이 해주었으면 한다.
또한 ‘바우처사업지원금’도 더 다양하게 운영되고, 지원 규모도 확대되길 바란다. ‘청년일자리지원금’이나 ‘시니어지원금’ 외에도 제조업 분야를 대상으로 한 고용·근로 관련 지원이 더 늘어나면 좋겠다. 중소 제조업체들이 인력난과 운영비 부담을 줄이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강화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