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 속에 묵직한 기류. 주식회사 주안이엔지를 방문했을 때 단 한 사람이 텅 빈 공간을 단단하게 채우고 있었다. 경영을 맡고 있는 전정옥 대표의 겉모습은 흡사 스티브 잡스를 닮아있었다. 청바지에 무채색 니트, 운동화로 깔끔하면서도 소박하게 단장한 차림이지만 표정에서는 카리스마가 가득했다.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경영인의 자신감이 그대로 묻어났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회의실로 향하자, 책상 위에는 주안이엔지가 만들고 있는 친환경 제품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반도체 장비 배관 사업으로 성장한 주안이엔지는 최근 친환경 소재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대화를 나누면서 그 인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경영인으로서의 탄탄한 면모와 함께 사회적 기여, 봉사활동 이야기를 할 때는 ‘봄날의 햇살’ 같은 온정이 묻어났다.

처음엔 과묵할 것 같았지만, 막상 말을 시작하자 논리적이고 조리 있는 화법이 귀에 쏙 들어왔다. 그의 말은 이해를 돕고 마음을 움직였다. 기술적 전문성과 인간적인 온기를 동시에 갖춘 리더, 그것이 전정옥 대표의 첫인상이었다.

전정옥 대표는 반도체 배관 전문기업을 15년간 이끌며 현장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실무형 리더다. 냉철한 판단력과 따뜻한 인간미로 산업과 사회의 균형을 이루는 리더십을 보여준다. [사진=주안이엔지]


Q. 주식회사 주안이엔지는 어떤 기업인가.

주안이엔지는 2010년에 법인으로 설립해서 올해로 15년 차가 된 주식회사다. 반도체 장비에 들어가는 배관 제조와 설치, 시공, 설계까지 하는 업체다. 현재 삼성디스플레이, 주성엔지니어링, 원익 홀딩스, 삼우건축사사무소 등 총 25개 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반도체 사업은 감사하게도 현재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2020년부터는 친환경 플라스틱과 비닐을 생산할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사업을 준비하고 있으며, 반도체용 패킹 분야 진출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Q.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있을까.

남편이 반도체 엔지니어로 오랜 시간을 일해왔고, 충분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전문 엔지니어로서 20살 때부터 일을 시작한 사람이다. 나는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가 결혼 후 전업주부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반도체 사업 경영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다. 워낙 남편의 실력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남편과는 공동 취미로 낚시를 자주 다녔다. 나란히 앉아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업계 관계자들과 함께 일을 도모하다 보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 서로간의 신뢰가 있었다.

한 팀으로 시작된 회사는 규모가 커지면서 여러 팀이 구성됐고 회사는 성장세를 탔다. 처음에는 시공만 하던 회사가 점차 반도체 라인 제작과 설치, 설계까지 하게 됐다. 그러면서 삼성과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과 교류하게 되었고 회사는 더욱 번창했다.

반도체 라인이라는 말이 낯설 수 있다. 이해를 돕자면 반도체 장비에 들어가는 배관을 뜻한다. 반도체 장비에서는 여러 종류의 가스가 발생한다. 우리가 잘 아는 산소나 물, 질소 같은 것들이 정밀한 배관을 통해 흐르는데, 우리는 그 관들을 연결해 가스가 자유롭게 흐르도록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Q. 사업을 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

초창기가 가장 어려웠다. 자본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다 보니 직원들의 월급이 밀린 적도 있었다. 창립 후 3~4년 동안은 꾸준히 성장했고 직원 수도 늘었지만, 반도체 경기가 점점 침체하면서 쉽지 않은 시기가 찾아왔다. 재작년과 작년도 마찬가지로 힘들었다. 이런 경기 변동 속에서 거래처가 적으면 상황이 더욱 어려워진다.

지금은 다행히 거래처가 많아졌고 주요 반도체 회사라면 주안이엔지를 아니까 보람을 느낀다. 내가 특별히 영업을 다니는 편은 아니다. 대부분의 관계는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맺어진다. 그래서 경영인인 나 역시 현장에 자주 들러 인사를 나누곤 한다. 덕분에 영업보다는 품질 관리와 납기 준수에 더욱 신경을 쓸 수 있다.

Q. 직원 40여 명과 회사를 이끌고 있다.

현재 42명의 식구와 함께하고 있다.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해 현장에 나가면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거나 어깨를 주물러주고 다독이곤 한다. 10년 넘게 함께한 초창기 멤버들에게는 친구처럼 편하게 말하며 지낸다.

직원 복리후생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최고의 복지는 결국 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반도체 업체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매년 결산이 끝난 후에는 성과급도 지급한다. 지난해에는 최소 100%에서 많게는 200%까지 지급했다. 장거리 출근을 하는 직원들을 위해 기숙사도 운영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회사에서는 유류비 지급이나 출산 휴가 같은 제도는 당연히 시행하고 있다. 특히 장기 근속자들에게는 과거에 5돈 금이나 5성급 호텔 숙박권을 제공했는데, 최근에는 금값과 물가가 많이 올라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Q. 경영 철학이 궁금하다.

나는 이 회사를 내가 혼자 만든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원들과 함께 일궈가는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이 나누려고 한다. 순이익의 30%는 직원들에게 돌려주고, 30%는 회사 운영에 사용하며, 나머지 30%는 새로운 투자에 쓰고 있다. 그래서 내가 가진 건 많지 않다. 현재는 100억 규모의 프로젝트로 친환경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주안이엔지의 미래이기에 열심히 하고 있다.

Q. 이렇게 친환경 사업에 투자 및 진행을 하고 있는데 전망은 어떤가.

친환경 원료에는 8년 전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대표들의 친목활동을 하는 모임(상공회의소.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경기도 기업경제인 협회)에서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재미를 느꼈다. 조카가 자연 친화적인 원료 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함께 일을 하게 됐다. 지금은 조카와 함께 원료 및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 은평구에서 올해부터 시범사업으로 친환경 쓰레기봉투가 시행될 예정이다. 75리터 봉투가 납품될 계획이다. 농업용 비닐 같은 경우에도 농협과 협약을 맺어 자연 친화적인 비닐로 전환될 전망이다. 원료 단가가 높아 큰 수익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반도체 사업에서 얻는 수익 덕분에 친환경 사업에 투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이 많다.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앞으로 환경이 달라지지 않으면 전 세계가 큰 타격이 온다고 생각한다.

Q. 현재 업계 상황과 정부 정책에 대해 바라는 점은.

요즘 업계 상황이 좋지 않다. 대미관계를 비롯한 무역 문제도 있지만, 반도체 중소기업은 삼성이나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큰 기업이 장비를 얼마나 생산하고 얼마나 많이 만드는지에 따라 전체 산업의 싸이클링이 달라진다. 대기업의 생산이 줄어들면 1차, 2차, 3차 협력사들이 줄줄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구조다.

정책은 일관적이었으면 좋겠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 방향이 달라지는 점이 힘들다. 우리 회사도 현재 친환경 제품을 개발하고 있지만, 상용화하거나 시장에 내놓는 일이 쉽지 않다. 규제가 너무 많다는 점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친환경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원료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용인시에 짓고 있다. 건축물 관련한 규제가 워낙 많아 하나하나 직접 찾아보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면 정부가 지원해 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우리가 스스로 알아보고 부딪혀야 한다. 이런 현실이 가장 어렵다.

Q. 사회공헌과 이바지를 강조했는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비록 큰 금액은 아니지만 용인시 사회복지협의회, 성정문화재단, 에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으며, 적십자(씀씀이가 바른 기업)에도 소액이지만 정기 후원을 이어가고 있고, 용인시 여성기업인협의회를 통해 주기적으로 봉사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있다. 올해 처음 방문한 ‘경기아동임시보호소’라는 기관이다. 이곳은 아이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다. 부모가 갑작스러운 일로 돌볼 수 없거나 가정폭력 등으로 보호가 필요한 경우 0세부터 16세까지의 아이들을 보호하는 곳이다. 교육 교사들이 3교대로 근무하며 아이들을 힘겹게 보살피고 있었는데, 여러모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함께 봉사하는 모임과 함께 침대와 수납장을 직접 만들고, 필요한 물품을 정리해 주었다. 그 일을 하면서 아직도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봉사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은 관심과 노력이 있다면 언제든 사회는 더 밝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