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측기·센서·산업장비 시장은 제조업의 정확도와 품질을 결정한다. 이 시장에 혜성같이 등장한 ‘지니어스인더스트리’는 계측기·센서·산업장비 정보를 한곳에 모아 비교·견적·납기 확인·기술 상담까지 제공하는 산업장비 B2B 플랫폼이다.
지니어스허브 박병진 대표 본캐는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하고 계측기 유통 회사에서 영업·고객관리·세일즈 전략을 맡아온 실무형 창업자이면서, 부캐는 20년 가까이 밴드 활동을 병행해 온 펑크 록커이기도 하다. 2025년 ‘한강 멍때리기 대회’ 우승으로 다양한 매체들의 관심을 받으며 독특한 개인 브랜딩을 만들어가고 있다.
박 대표는 산업장비 분야의 쿠팡, 계측기 분야의 무신사를 꿈꾸며, 지니어스인더스트리의 새로운 차원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박병진 지니어스허브 대표. 산업장비 B2B 플랫폼 ‘지니어스인더스트리’를 운영하며 계측기·센서·산업장비 구매 과정을 디지털 인프라로 재편했다. 고객과의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중시하며 고객을 향한 진정성 있는 태도가 결국 또 다른 선순환으로 이어진다고 여긴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딱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아버지로서의 이유다. 두 아이를 키우며 저녁에 치킨 한 마리를 시킬 때도 망설이는 내 모습이 싫었다. 월급 200만 원 남짓을 받는 외벌이로 네 식구가 살아가다 보니 늘 빠듯했다. 평생 이렇게만 살 수는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고, 언젠가 아빠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두 번째는 시장을 직접 겪으며 생긴 생각이다. 계측기와 센서, 산업 장비를 사는 과정이 지나치도록 불편했다. 정보는 여기저기 흩어져있었고, 자료는 회원 가입을 해야만 볼 수 있었다. 견적은 전화와 팩스를 돌려야만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모든 메이커의 제품 정보를 한곳에 모으고, 스펙과 자료를 이미지로 정리해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나를 위해 만든 것이었지만, 내가 편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편하겠다는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Q. 플랫폼을 이용하는 고객사는 어떤 곳들인가. 실제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메인 고객군은 B2B다. 다만 범위는 B2C까지 넓다. 1인 개인 연구자부터 학교와 병원,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대기업, 공공기관까지 계측기와 산업 장비가 필요하면 지니어스를 이용한다고 보면 된다. 지금까지 누적으로 보면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합쳐 약 3천 개 기업이 지니어스인더스트리를 통해 장비를 구매했다. 2024년 기준 연간 방문자 수는 약 20만 명이며, 누적 견적 문의는 1만 건을 넘는다. 수치는 커졌지만, 내부에서는 오늘 처음 만나는 한 명의 엔지니어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고객을 대하고 있다.
Q. 고객이 가장 크게 체감하는 차별점은.
고객이 지니어스인더스트리를 이용할 때 가장 먼저 체감하는 차이는 정보에 닿는 방식과 속도다. 메이커별 제품 정보를 한 번에 비교하고 살펴볼 수 있도록 정리했고, 회원 가입을 요구하지 않아 처음 들어왔을 때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내근 인력을 따로 두고 홈페이지로 문의가 들어오면 바로 견적을 전달하고 있다. 전국 재고를 한 번에 확인해 현재 국내에 물량이 있는지, 언제까지 납품할 수 있는지 바로 알려주는 점도 고객이 분명히 느끼는 부분이다.
또 하나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은 신뢰와 CS다. 얼굴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전화와 이메일만으로 고액의 장비 대금을 송금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를 통해 장비를 구매하지 않더라도 수리가 가능한 곳을 안내하고, 오래된 장비라 출처를 알 수 없는 경우에도 해결할 방법을 함께 찾고 있다.
지니어스인더스트리의 스테디셀러인 ‘데이터 로거’는 온도·압력·진동 등 다양한 신호를 수집·기록해 연구·품질 개선의 기초 데이터를 제공하는 필수 계측 장비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지니어스인더스트리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품목은 무엇인가.
일본계 브랜드의 데이터 로거가 매출 약 30%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다. 해당 브랜드의 공식 대리점이기도 하다.
데이터 로거는 여러 채널에 압력 센서와 온도 센서 같은 다양한 센서를 연결해 신호를 측정하고 기록하는 장비다. 기업 연구 부서나 품질 부서에서 공정을 개선하려면 먼저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반드시 사용된다. 국내 주요 대기업의 연구·품질 부서마다 한두 대씩은 갖추고 있다고 보고 있다.
Q. 사업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
초기에 프라이머 데모데이에 참가했던 경험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수많은 VC 앞에서 5분 안에 우리가 왜 이 일을 하게 됐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자리였다. 계측기와 산업 장비를 사는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점, 필요한 정보를 찾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점을 짧은 시간 안에 전달해야 했다. 말 그대로 숨 돌릴 틈 없이 지나간 5분 발표였다.
당시 비즈니스 모델은 VC들이 익숙해하는 투자와는 거리가 있었고,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서 많은 것을 보게 됐다. 이미 흥미롭고 날카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나온 창업자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그 경험 이후로 더 차분하게 돌아보게 됐고,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오래 할 수 있는 한 분야를 정해 끝까지 파고들어야겠다는 마음이 분명해졌다.
Q. 최근 제조 산업의 투자와 계측기 시장 분위기는 어떻게 보고 있나.
지금은 숨을 고르는 시기라고 본다. 제조 산업에 투자 심리가 가라앉아 있고, 설비 투자는 예전처럼 과감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여기에 정부 R&D 예산이 줄면서 연구소와 학교, 공공기관, 기업 연구 부서 모두 꼭 필요한 장비만 고르는 쪽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겉으로 보면 정체처럼 보이지만, 효율이 증명된 곳만 남는 시간이라고도 느낀다. 가격 대비 성능이 분명한 장비, 서비스와 A/S가 검증된 업체, 온라인에서 정보를 명확하게 제공하는 플랫폼이 선택을 받기 시작했다. 시장이 불안할수록 어디서 무엇을 사야 하는지, 이 선택이 맞는지 함께 점검해 줄 상대를 찾게 된다.
나는 이 시간을 침체로만 보지 않는다. 산업 현장의 성격이 달라지는 과정에서 우리 플랫폼이 어떤 포지션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다.
Q. 정부 정책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R&D 예산은 당장 줄일 비용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장기 투자다. 계측기와 센서, 시험과 계측 장비에 의존하는 제조와 연구 현장에서는 정확하게 측정하고 검증하는 능력 자체가 경쟁력이다. 이런 이유로 중소·중견기업과 학교, 연구소가 R&D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야 하며, 오래된 장비를 교체할 수 있도록 장비 도입을 위한 펀드나 세액공제 지원도 더 넓어져야 한다.
산업 장비 B2B 플랫폼과 디지털 인프라, 데이터 서비스 역시 정책적으로 육성할 대상이다. 테스트베드와 시범사업, 공공 조달과 연결되는 기회를 지금보다 더 많이 열어줄 필요가 있다. R&D 투자와 측정·시험 장비 지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 지원은 국내 제조업과 기술 현장이 버티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다.
Q. AI와 플랫폼의 도입이 업계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 보나.
2020년에 창업할 때만 해도 5년 정도까지는 사람이 직접 상담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낼 수 있겠지만, 그 이후에는 AI 때문에 우리 같은 회사가 필요 없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5년을 달려오고 나니 생각이 오히려 바뀌었다. 내가 두려워하던 AI를 먼저 끌어안으면, 상황은 반대로 흘러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챗GPT의 제품 추천을 통해 지니어스인더스트리로 유입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내가 그리는 다음 단계는 그동안 고객과 주고받은 상담 기록을 AI에 학습시키는 일이다. 그러면 AI가 기본적인 상담의 상당 부분을 맡고, 사람은 현장 방문과 납품, 그리고 경험이 필요한 상담에 집중하게 된다. 다만 CS의 핵심은 결국 친절이다. 사람보다 더 무뚝뚝한 챗봇이 되지 않도록 설계하는 일이 중요하다. 사람은 사람이 잘하는 일을 맡고, 기계는 기계가 잘하는 일을 맡기는 쪽으로 가야 한다.
Q. 글로벌 진출과 수익 구조 측면에서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
지니어스인더스트리 사이트의 90% 이상은 아직 한글로만 구성돼 있다. 그럼에도 하루에 평균 5명 정도는 해외에서 영어로 문의가 들어온다. 정식 영문 사이트를 열면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 비즈니스가 조금 더 안정되는 시점에 맞춰 글로벌 사이트를 본격적으로 준비할 계획이다. 해외에서 장비를 들여와 국내에 공급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역수출 형태로 가격 경쟁력이 생기는 수요도 이미 확인했다.
글로벌 진출을 시작하면 첫해에만 최소 5억에서 10억 원 정도의 추가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국내에서 이미 운영 경험과 시스템을 쌓아왔기 때문에, 현지 파트너와 연결만 잘 이뤄지면 충분히 현실적인 수치다.
향후 ‘지니어스 인더스트리’를 산업장비 구매 전 과정을 하나로 연결한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며, AI 기반 추천·견적 시스템과 토탈 솔루션을 통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앞으로 지니어스허브를 어떤 기업으로 키워가고 싶나.
산업장비와 관련된 모든 과정을 지니어스인더스트리 하나로 마칠 수 있도록 하고싶다. 국내 비즈니스에서는 AI를 활용한 추천과 견적 시스템을 더 발전시키고, 구매 담당자와 엔지니어가 선택을 내리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 도구가 되는 것이 목표다.
신품과 중고, 렌탈, 교육 콘텐츠, 엔지니어와 연구자가 모이는 커뮤니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장비를 들이는 시점부터 사용을 마칠 때까지 전 과정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회사를 검색해 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이름으로 남고 싶다. 눈앞의 유행을 좇기보다 산업 현장에서 10년, 20년 동안 묵묵히 사용되는 인프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 지니어스허브와 지니어스인더스트리가 원하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