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언어다. 말보다 먼저 시선을 멈추게 하고, 분위기로 마음을 움직인다. 아이엔디자인그룹은 그 언어로 기업의 이미지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팀이다. 박종호 대표는 낡은 공장이 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공간이 사람의 태도와 생각을 바꾸는 힘을 확인했다. 그 경험은 지금의 아이엔디자인그룹을 있게 했다.
전시는 브랜드가 철학을 증명하는 자리다. 아이엔디자인그룹은 효율과 미감을 함께 추구하며, 공간을 통해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기능과 감성이 균형을 이루는 이들의 작업은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새로운 설득력을 더한다. 아이엔디자인그룹 박종호 대표를 만났다.
박종호 대표는 결과 지향형 전시 공간 디자인 전문 기업 아이엔디자인그룹을 이끌고 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전시·부스 위치와 관람 동선을 최적화함으로써 리드·매출 성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해외 공장 리뉴얼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공간이 사람을 바꾸는 힘을 직접 경험했다. 처음 그곳은 낙후된 공장이었고, 직원들은 무표정하고 냉담했다. 전면 리노베이션이 진행되면서 로고와 간판, 쇼룸, 오피스 인테리어가 새롭게 정비됐다. 1년 동안 여러 차례 현장을 오가며 변화를 지켜봤는데, 공간이 달라질수록 사람들의 표정과 태도가 달라졌다. 불신이 걷히고 복장이 단정해지더니, 마지막에는 나를 먼저 반갑게 맞이했다. 그때 공간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기업의 문화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 경험이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Q. 현장에서 디자인을 진행할 때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었나.
앞서 말한 프로젝트는 고객사가 새로 인수한 현장이었다. 중국의 오지였고, 적벽대전이 일어났던 지역 근처에 있었다. 관광지와도 거리가 멀고, 환경도 열악했다. 우리는 새로 인수한 고객사의 매뉴얼에 맞추어, 브랜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간판, 인테리어, 쇼룸 등을 순차적으로 정비하며 회사의 이미지와 메시지가 드러나도록 했다. 현장의 제약이 많았지만, 브랜드의 본질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려고 했다. 고객의 니즈를 반영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Q. 현재 비즈니스를 설명한다면.
전시 공간, 이벤트 팝업, 쇼룸, 미디어아트 등 사람을 모으고 매출을 만드는 경험을 만든다. ‘B frame’은 알루미늄 구조체에 텐션패브릭 그래픽을 결합한 모듈형 전시 시스템으로, 설치와 해체가 간편하고 확장성이 높다. 경량이면서도 공구 없이 설치가 가능하다. 벽면 전체를 그래픽으로 채워 브랜드 임팩트를 극대화할 수 있고, 프레임은 재사용하면서 그래픽만 교체할 수 있어 환경에 부담을 낮추고, 비용 효율성을 갖추었다. 해당 솔루션으로, 브랜드는 전시나 이벤트마다 새로 제작하는 부담 없이, 빠르게 설치하고 쉽게 변형할 수 있는 유연한 공간 운영이 가능하다.
아이엔디자인그룹은 공간 디자인과 전시 기획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입증해 왔으며, 대표 실적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LG전자의 상업용 디스플레이 전시회 ‘ISE(Integrated Systems Europe)’ 참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사진=아이엔디자인그룹]
Q. 상업 공간 기획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공간은 곧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제품을 설명할 때는 말을 하지만, 공간은 디자인으로 말한다. 고객이 전시장에 오면 체험과 경험을 통해 제품이 어떤 장점이 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기획 단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각 요소의 배치와 동선, 시선까지 섬세하게 구성해 브랜드의 개성과 철학이 공간 전체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한다.
아이엔디자인그룹의 또 다른 주요 작업으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아시아 최초로 열린 ‘네옴 전시회(Discover NEOM: A New Future by Design)’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 도시 개발 프로젝트 ‘네옴’을 강렬하고 세련되게 소개하는데 기여했다. [사진=아이엔디자인그룹]
Q. 개인 공간도 세심히 꾸미는 편인가.
사무실 공간도 프로젝트와 목표에 맞추어 꾸준히 변화한다. 사무실 배치나 레이아웃을 바꾸고, 구성원이 함께 일하게 할지 떨어져 일하게 할지까지 고려한다. 공간과 인테리어를 먼저 바꾸고, 그 안에서 조직이 어떻게 활동할지를 결정한다. 공간은 팀의 분위기와 사고방식까지 바꾸는 요인이기 때문에, 변화의 방향을 정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요소다.
Q. 아이엔디자인그룹의 핵심 솔루션 ‘B frame’ 패브릭 시스템이란.
전시회는 좋은 마케팅 기회이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해외에서는 인건비가 높고 친환경 이슈가 부각하면서 이미 10~20년 전부터 이런 시스템이 도입됐다. 반면 국내는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했기에 목공 제작을 선호했으나, 코로나 이후 인건비가 크게 오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프레임은 조립식 구조에 텐션패브릭을 씌우는 것이다. 기존 조립 부스와 달리 목공 부스처럼 완성도 있는 느낌을 주면서도 비용은 30% 이상 절감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절반까지도 줄어든다. 절감한 예산은 조명 연출, 고객 선물, 케이터링 같은 다른 영역에 사용해 훨씬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다.
Q. ‘B frame’이 기존 목공 부스를 어떻게 보완한다고 볼 수 있나.
목공 부스는 나무와 화학 마감재를 사용해 공정이 많고, 폐기물도 대량으로 발생한다. 반면 패브릭 시스템은 모듈을 재사용할 수 있고, 출력한 그래픽 면은 에코백 같은 이벤트 용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무게가 가벼워, 운송비와 설치 비용도 줄어든다. 특히 미국 전시는 노조 규정이 엄격해 운송과 설치에 큰 비용이 드는데, 이 시스템은 그 부담을 크게 줄여 준다. 환경적 부담을 줄이면서 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
Q. 국내 도입 현황은 어떠한가.
아직은 초기 단계다. 대부분 잘 알지 못해 도입률이 낮다. 우리는 이미 10년 전부터 시행착오를 겪으며 완성도를 높여 왔다. 지금은 시행착오가 거의 없는 완성형 단계라고 할 수 있다.
Q. 준비 중인 새로운 프로젝트는.
전시는 고객을 만나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지만, 무게와 시간 때문에 비용 부담이 크다. 인플레이션 이후 그 부담은 더욱 커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량·모듈·그래픽의 ‘B frame’을 론칭했다. 처음 전시를 준비하는 고객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실제로 국내 H사는 기존 목공 부스를 B frame으로 전환해 비용을 절반 이상 절감했고, 동시에 브랜드 메시지를 더 크게 전달할 수 있었다.
국내 최대 게임쇼 ‘지스타(G-STAR)’에 참가한 네이버클라우드 전시관. 10년 전부터 꾸준히 연구하고 도입해온 친환경 모듈인 패브릭 부스를 적용했다. [사진=아이엔디자인그룹]
Q. 향후 계획으로 도시별 패키지와 산업별 템플릿을 준비한다고.
전시회를 준비하는 담당자들은 챙겨야 할 일이 많다. 실행력을 높이고, 복잡한 과정을 줄이기 위해 지역별, 산업별 패키지를 개발하고 있다. 지역마다 규정과 환경이 달라 특정 지역에서는 가능한 일이 다른 지역에서는 불가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라스베이거스 전시는 노조 규정이 엄격해, 직접 설치를 할 수 없고, 운송비도 무게에 따라 추가 비용이 청구된다. 정보를 미리 알지 못하면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한다. 우리는 12년 동안 쌓은 경험으로 고객의 시행착오를 줄인다.
Q. 산업별 차이는 어떠한가.
산업별로 강조할 포인트가 다르다. IT 전시는 체험과 이미지 전달이 중요하고, 제조업 전시는 대형 장비를 효과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핵심이다. 의료기기나 정밀 기술 분야의 경우 신뢰감과 전문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며, 소비재 전시는 감각적인 연출과 몰입도를 높이는 구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현미경처럼 작은 제품부터 수 톤짜리 장비까지 다양한 전시를 진행했다 각 산업의 특성과 고객의 목표에 맞는 공간을 제안한다.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전시장 안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드러나도록 돕는다.
Q. 주 고객층과 고객 관리 방식이 궁금하다.
주 고객은 국내외 전시를 준비하는 기업과 브랜드 리뉴얼, 신제품 론칭을 앞둔 팀이다. 고객 관리는 전시 목표 설정부터 시작한다. 이어 목공과 B frame의 총비용(TCO)을 비교해 보여 주고, 메시지 중심으로 세 가지 안을 제시한다. 전시 후에는 재사용, 보관, 다음 전시로의 전환까지 함께한다. 아직 B frame은 국내에 생소하므로,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사례와 팁을 꾸준히 공유하고 있다.
Q. 경영철학은 무엇인가.
‘Same budget, bigger message.’(같은 예산으로 더 큰 메시지를 만든다)는 말처럼, 한정된 자원 안에서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같은 예산이라면 무게와 복잡도를 줄이고 메시지와 경험을 키워야 한다. 숨은 청구 비용이 없도록 처음부터 숫자와 리스크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효율적인 설계와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고객이 예산에서 최대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경영철학이다.
아이엔디자인그룹 박종호 대표의 변함없는 목표는 고객이 전시를 통해 최고의 결과를 내는 것이다. 효율적인 설계와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정해진 예산 내에서 최대의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전시가 막막하다고 하던 고객이 결과물을 보고 기뻐하는 순간, 현장에서 제품이 완판되는 순간, 공간이 사람들로 가득 차는 순간이 큰 보람이다. 공간을 통해 브랜드의 존재감이 커지고, 그 변화가 고객 반응과 매출로 이어질 때 이 일이 가진 힘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아이엔디자인그룹의 패브릭 부스를 적용한 또 다른 사례로,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계 최대 공작기계 전시회 ‘EMO’에 DN솔루션즈가 참가했다. [사진=아이엔디자인그룹]
Q. 최근 업계 분위기와 변화는 어떠한가.
이제는 친환경, 경량, 모듈이 기준이 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일찍부터 패브릭 시스템 부스를 도입해 왔고, 국내도 인건비가 오르면서 경량 모듈이 오히려 경제적 대안이 되었다. 우리는 10년 전부터 패브릭과 종이 부스 등 친환경 모듈을 연구하고 도입해 왔다. 이제는 비용과 효과 측면에서 충분한 경쟁력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Q. 정책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친환경 모듈 전시에 대한 인증 제도와 인센티브가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전시 현장은 지역과 주최 기관에 따라 규정과 비용 체계가 제각각이어서 참가 기업이 예산을 예측하기 어렵다. 특히 인건비와 전시장 내 화물 운반 및 설치에 드는 드레이지 비용을 사전에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런 항목들의 표준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기업들이 합리적으로 전시를 계획하고 예산을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다.
Q.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의 목표는 고객이 전시를 통해 눈에 띄는 성과를 얻는 것이다. 전시회 현장에서 수억 원대 장비가 모두 판매되는 순간이나, 비어 있던 상가를 전시 공간으로 전환해 두 달 만에 3만 명이 방문한 사례처럼, 공간이 만들어내는 결과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는 ‘B frame’으로 라스베이거스, 시카고 등 주요 도시별 패키지와 제조, IT, 의료기기 분야별 템플릿을 확장해, 처음 전시를 준비하는 이들도 어려움 없이 완성도 높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시스템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고객의 성공을 현실로 만드는 일을 함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