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규 대표에게 사업이란 생계를 위한 선택이었다. 투자 실패로 신용불량자가 된 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경쟁사를 깎아내리지 않고 관계를 이어간 진정성은 ‘압박스타킹’이라는 아이템으로 돌아왔다. 고객을 만나고 제품을 알리고, 시장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비즈니스는 방향을 찾게 되었다.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삶’을 고민하며 선택한 사업, 그리고 의료 현장에서 실제로 필요한 물건을 만들겠다는 집념이 오늘의 닥터서플라이를 만들었다. 카본 기술이라는 어려운 고비를 10년에 걸쳐 넘었고, 지금도 100% 전수 검사를 시행한다. 진정성 있는 관계와 집요한 실행력으로 닥터서플라이를 성장시켜 온 안승규 대표를 만났다.
안승규 대표는 압박스타킹을 의료기기로 전환하며, 전문 의료기기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회사인 닥터서플라이를 창업했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간단한 자기소개와 창업 배경을 이야기한다면.
닥터서플라이는 전문 의료기기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회사다. 1995년 제약회사 노바티스에 입사해 2002년까지 근무했고, 퇴사 후 두 달 만에 증권 투자 실패로 신용불량자가 됐다. 창업의 시작은 생존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주변에서 사업에 실패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내 인생에 사업은 없을 거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한 회사에 스카우트돼 일하던 중 한 달 만에 5억 원의 수익을 올렸고, 사장은 나를 귀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일 자체의 만족감과 별개로 조직 내에서의 관계는 쉽지 않았다. 고객들과의 관계는 원활했지만, 내부 직원들과는 신뢰를 쌓기가 어려웠다. 성과 중심의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경계하고 소통이 단절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나 역시 사람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커졌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 없이 일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내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닥터서플라이 안승규 대표는 함께 오래가는 경영을 기반으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 개발을 통해 삶의 질 향상에 힘쓰고 있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사업 아이템으로 ‘압박스타킹’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사실 처음부터 내가 이 일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당시 경쟁사 직원이 제품 하나를 건네며 제안했다. 그 제품이 바로 압박스타킹이었다. 처음에는 남자가 무슨 여자 스타킹이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일단 한 번 대학병원 교수님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제품을 보자마자 “내가 처방하는 거야”라고 이야기하셨다.
그때부터, 당시 강남성모병원 혈관외과 진료실 앞에 앉아 있다가 환자 이름이 불리면 함께 들어가 제품 상담을 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도 같은 식으로 판매했고, 하나에 8만 원인 스타킹을 2만 5천 원에 들여왔기 때문에 개당 4만~5만 원의 수익이 남았다. 하루 20개씩 판매해, 한 달 수익이 천만 원을 넘기도 했다. 당시에는 의료기기도 아니었고, 보험 적용도 되지 않았지만, 여러 병원에서 실제로 이 제품이 사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이걸 제대로 시스템화하면 사업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 압박스타킹을 의료기기로 전환하고, 제도권 안으로 끌어냈으며, 보험 적용이 가능하도록 일조했다. 수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제조까지 하고 있고, 20년 넘게 거래해 온 글로벌 에이전트와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다.
닥터서플라이는 압박스타킹 자체 제조 설비를 갖추고, 착용감과 패션성을 겸비한 프리미엄 압박스타킹 브랜드를 론칭했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경쟁사에서 아이템을 제안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당시 신용불량 상태였고 생계를 이어갈 방법을 찾던 중이었다. 그때 한 경쟁사 직원이 압박스타킹이라는 제품을 제안했다. 자사 제품이 아닌 아이템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 제안이 닥터서플라이의 시작이 되었다.
나에게 하나의 철칙이 있었다. 경쟁사를 절대 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품으로 승부를 겨뤄야 한다고 믿었고, 영업할 때도 경쟁사를 깎아내리며 접근한 적이 없었다. 그런 태도로 임하다 보니 경쟁사 사람들과도 오히려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시장점유율도 유지했다. 비즈니스는 관계를 어떻게 진정성 있게 쌓아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
Q. 현재 닥터서플라이의 주요 제품군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닥터서플라이의 사업은 네 가지 제품군으로 구성된다. 압박스타킹은 수입으로 시작해 자체 제조까지 이어졌고, 국내 최초로 의료기기화와 보험급여 등록을 완료한 품목이다. 현재는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품질의 제품을 자체 생산하고 있다.
혈액순환 보조 장비는 수술방, 중환자실, 일반 병실 등에서 사용되며, 정맥벽을 압박하거나 마사지를 통해 혈액순환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인공관절 수술 후나 각종 수술 후에 사용하는 압박붕대와 아이싱 제품은 ‘이지랩’이라는 이름으로 병원에 후처치 용도로 공급되고 있다.
은사매트는 2009년 온열 복대 개발을 시작으로 카본 기술을 접목한 섬유 매트로 진화했으며, 약 10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2021년 제품화에 성공했다. 현재는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사업이다.
Q. 은사매트 기술 개발에 있어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카본(탄소섬유)은 가볍고 유연하면서도 강도가 높아 소재로서 매우 우수하다. 하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납과 결합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즉, 바인딩이 되지 않아 가공할 수 없었다. 이 기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려 10년이 걸렸다. 우리가 이 특허를 가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겪었고, 한때는 불량률이 100%에 이르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도 카본 제품에 한해서는 단 한 개도 예외 없이 100% 전수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검사에 따른 비용 부담은 크지만, 불량률을 0%대까지 낮추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내부 연구소에서는 불량 발생을 예측하고, 다양한 조건에서 시뮬레이션을 반복하고 있다. 예측이 가능한 불량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변수를 줄이기 위한 전사적 노력이 지속되고 있으며, 불량을 사전에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 또한 자체 구축해 운영 중이다.
Q. 최근 도입한 ‘비포서비스’는 어떤 개념인가.
다른 회사들이 사후조치로서의 ‘AS(After Service)’를 이야기한다면, 닥터서플라이는 ‘BS(Before Service)’를 지향한다. 최근 IoT 기술을 적용한 하이엔드 제품군에 도입된 서비스로, 제품이 고장나기 전에 사전에 상태를 진단하고 문제를 예방하는 시스템이다.
고객이 원격 진단에 동의하면, 회사 서버에서 매트 상태를 정기적으로 확인한다. 이 과정을 통해 제품에 이상 징후가 있으면, 화재 위험 등 주요 리스크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다. 이는 철저한 사전 예방 관리다. 이뿐만 아니라 스케줄링 기능도 탑재되어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자녀가 지방에 있는 부모의 매트를 원격으로 켜드릴 수 있고, 요일별·시간대별로 온도와 강도를 자동 조절할 수 있다. 현재는 수면 패턴을 분석해 자동으로 온도를 조절하는 기능까지 개발 중이다.
닥터서플라이는 제품이 고장 나기 전에 사전에 상태를 진단하고 문제를 예방하는 ‘BS(Before Service)’를 지향한다. 최근 IoT 기술을 적용한 하이엔드 제품군에 도입됐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최근 출시한 주요 제품들을 소개한다면.
최근 출시된 제품은 프리미엄 은사매트 클래스 SS 듀얼, 은사매트 뱀부 클래식, 카본 케어 힐링 패치이다. ‘프리미엄 은사매트 클래스 SS 듀얼’은 IoT 기능이 탑재되었다. 원격 스케줄링과 고장 가능성을 사전에 진단하는 비포서비스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사용자가 스마트폰으로 제품을 제어할 수 있고, 매트 상태를 원격에서 실시간으로 점검받을 수 있다.
‘은사매트 뱀부 클래식’은 원적외선을 방출하는 제품이다. 천연 원적외선을 내는 뱀부 원단과 기존 은탄소의 조합으로 이중 원적외선 효과를 구현해 깊은 따뜻함을 제공한다.
항균성과 통기성이 우수한 대나무 원단을 사용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사용감을 유지한다. 사계절 내내 쾌적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위생성과 실용성을 모두 고려해 제작된 제품이다.
‘카본 케어 힐링 패치’는 재사용이 가능한 전기 찜질 제품으로, 벨크로 밴드를 이용해 손목, 발목, 무릎, 어깨 등 다양한 부위에 부착할 수 있으며, 따뜻한 열감으로 약 20~30분간 찜질 효과를 제공한다.
심 제품은 카본을 접목한 은사매트이며, 10년에 걸친 연구 끝에 개발됐다. 카본 제품에 한해서는 단 한 개도 예외 없이 100% 전수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경영철학이나, 삶의 가치관이 궁금하다.
욕심에 휘둘리지 않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자 한다. 함께 일하는 직원이나 고객도 결국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그들과 함께 가야 오래 갈 수 있다.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고, 결국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 우리 회사는 같이 산다는 철학으로 함께하고 있다.
Q.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우리 제품은 본래 병원에서 시작됐다. 수술실, 중환자실 가장 민감하고 취약한 환경에서 사용되고, 그 안에서 효과와 안정성을 검증받았다. 이러한 제품들을 일반 소비자에게 알리고자 한다. 압박스타킹의 경우는 일반용 라인업을 더욱 다양화할 계획이다. 여기에 패션성과 착용감을 반영한 보호대 제품,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마사지 기기도 개발 중이다.
매트류는 병원에서는 사용이 제한되지만, 일반 가정에서는 오히려 필요한 제품이다. 이 제품을 많은 소비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가격대를 낮추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안정성과 기능은 유지하고, 접근성을 높여 사람들의 일상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