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베톤은 ‘The’를 뜻하는 프랑스어 ‘LE’와 ‘콘크리트’를 의미하는 ‘BETON’의 합성어다. 이름처럼 부드러움과 단단함이 공존하는 양가적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르베톤이 다루는 ‘UHPC(Ultra High Performance Concrete)’는 초고성능 콘크리트로, 최대 150MPa의 압축강도를 지닌다. 기존 콘크리트보다 강도와 내구성이 뛰어나고, 부식에 대한 저항성도 높아 전문적인 제작과 시공이 요구된다.

르베톤은 이 소재의 특성을 살려 건축 자재와 조형물, 가구와 소품을 만든다. 르베톤의 제품은 모두 작품으로 여겨진다. 샌딩, 코팅, 결 처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에 시간을 들이고, 콘크리트 안에 기억을 새겨 넣는다. 신원철 대표는 수백 년을 견뎌온 건축물의 자재를 버리지 않고 되살리며 자원 순환에도 힘쓰고 있다.

르베톤 신원철 대표. 초고성능 콘크리트 UHPC를 통해 콘크리트를 수공예품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며 조형미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지인을 통해 우연히 콘크리트 제조 회사를 소개받으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관련 전공도 아니었고, 비슷한 일을 해본 적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면접을 보던 날 ‘이 기술을 5년만 제대로 배워서 내 회사를 차려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일을 해보니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나와도 잘 맞아서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그렇게 2015년부터 회사에 소속돼 일하다가 2019년에 르베톤을 설립하게 됐다.

Q. 르베톤 제품의 강점은.

처음에는 콘크리트 특유의 단단하고 차갑고 거친 성질이 마음에 들어 이 일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운 좋게 신소재 개발 테스트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고, 그때 UHPC를 처음 접했다. 콘크리트 본연의 물성을 유지하면서도 따뜻함이나 부드러움처럼 반대되는 감각까지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이 소재 덕분에 기존의 틀을 깨는 시도도 가능해졌다. 곡선형 대형 조형물이나 모듈형 제품 등 비정형 제작에도 도전했고, 그 과정에서 컬러에 많은 관심이 생겼다.

UHPC 덕분에 기존의 회색 중심에서 파스텔톤, 뉴트럴톤, 맞춤 색상 등 다양한 색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고, 컬러 테스트도 이뤄진다. 스튜디오에서는 제품마다 배합비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 대부분의 색을 구현할 수 있다. 컬러는 다른 어떤 요소보다 감정에 직관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고객과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분위기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24가지 색상을 제공하고, 원하는 색이 있다면 별도로 조색해 샘플을 제작한다. 다만 콘크리트 베이스이기 때문에 구현이 어려운 색도 있다. 이럴 때는 요청한 색에 가까운 색상 5가지를 제안해 가장 적합한 색을 고를 수 있도록 돕는다. 독일산 안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표면이 깨지더라도 색이 벗겨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르베톤은 24가지 기본 색상을 제공하고, 원하는 색이 있다면 별도로 조색해 샘플을 제작한다. [사진=강소기업뉴스]

Q. 현재 집중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제조업은 언제나 환경과 사회적 책임, 투명한 운영이라는 ESG 경영 과제를 안고 있다. 나 역시 이 분야에 있는 사람으로서 꼭 지켜야 할 가치 중 하나는 지속가능성이라고 본다. 그래서 자원 생산을 줄이고, 기존 자원을 재활용하며, 자원 순환을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 폐건축 자재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들이 모은 병뚜껑을 골재로 만들어 학교 벤치를 만들기도 하고, 즐거운 축제를 지나온 와인병, 철거된 집의 깨진 기와 조각처럼, 기억이 담긴 재료를 가공해 콘크리트 오브제로 되살리고 있다.

Q. 업사이클링과 자연소재 활용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이런 작업은 한 고객의 요청으로 시작됐다. 새로 집을 지을 예정이라며, 원래 살던 집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찾아오셨다. 그 뒤로 비슷한 문의가 계속됐고, 이 계기로 연구를 시작해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노하우를 쌓아왔다. 그 이후로는 새로운 자재를 쓰기보다는 기존에 있던 소재를 재가공해 활용하는 방향을 고객에게 제안하고 있다.

자연에서 얻은 자재를 활용한 적도 있다. 대전의 ‘헤레디움 카페’는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은 곳인데, 일반 골재 대신 자연석을 덩어리째 사용할 수 있도록 콘크리트를 별도로 조정했다. 새로운 시도였던 만큼 쉽지 않았지만, 그 덕분에 자연을 공간에 그대로 담아낼 수 있었고 주변 환경과도 잘 어우러져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함안 중앙초등학교에 있는 업사이클링 벤치. 학생들이 모은 폐플라스틱을 모아 가공하여 만들었다. [사진=르베톤]

대전 헤레디움 카페 내부. 일반 골재 대신 자연석 덩어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콘크리트를 조정했다. [사진=르베톤]

Q. 초고성능 콘크리트 제품 제작 과정이 꽤 까다로울 것 같다.

우리 제품은 거의 모든 과정이 수공예에 가깝다. 샌딩, 코팅, 결 처리까지 하나하나 신경을 기울여 세심하게 작업한다. 그래서 밤을 새우는 일이 많고,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다 보니 만든 제품마다 기억에 남는다. 다만 콘크리트는 특성상 무게가 많이 나가서 현장에 나가면 작업실에서 계획했던 것과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제품을 최대한 얇고 가볍게 만들면서도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과 내구성을 구현할 수 있도록 수정을 거듭한다.

Q. 제작 효율화와 자동화 시스템 구축에 관한 계획은.

초창기부터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 왔다. 우수한 장비를 꾸준히 늘려가고 있으며, 재사용이 가능한 형틀을 개발하는 데도 집중하고 있다. 구성원들이 쉽게 작업을 세팅할 수 있도록 기술력을 높이는 데에도 힘쓰고 있다.

수작업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초고성능 콘크리트 원료로 건축자재, 조형물, 가구, 소품, 공예품을 제작하는 콘크리트 전문 제조기업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제작 시간을 줄이고, 고객에게 맞춤형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Q. 경영철학이 궁금하다.

콘크리트를 통해 새로운 공간의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고객의 상상을 현실로 실현하는 파트너가 되고자 한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모든 공간, 가구와 오브제에는 고객의 생각, 감정, 고유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렇기에 깊이 고민하고, 정교하게 표현하며,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는 가치를 추구한다. 우리의 작업이 고객과 함께 써 내려가는 하나의 이야기이자 기억이 머무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Q.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그동안은 건축 자재, 조형물, 인테리어처럼 규모가 큰 프로젝트 위주로 작업해 왔지만, 최근에는 향수 받침대, 화분, 데스크 오브제처럼 작은 소품 제작 의뢰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많은 사람의 일상에 르베톤의 제품이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구든 우리의 제품을 직접 보고, 만지고, 경험할 수 있도록 서울에도 쇼룸을 만들고 싶다.

앞으로도 디자인과 기능, 지속가능성을 통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화하고, 공간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여 나가고자 한다.